안녕하세요, 조용히 읽고 천천히 보다입니다.
7월 넷플에서 종료예정작 중에 명작이 너무 많던데요.
이번엔 그중에서 평소 보고 싶었던 여인의 향기를 보았습니다.
※ 개인적인 감상평이라 반말체로 작성되었는데 양해 바랍니다.
(스포 주의)

영화의 스토리는
시력을 잃은 채 퇴직한 군인 프랭크 슬레이드와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모범생 찰리 심스의 만남과 대화로 전개된다.
찰리는 사립학교에 다닐 만큼 부유하진 않지만 장학금을 통해 학업을 이어가는데
그와 같이 나오는 학교 인물은 찰리와 대비되어 보인다.
대표적으로 조지가 있는데 조지는 부유한 집안에 항상 여유롭고 친구들과 연휴에
스위스로 스키 휴가를 간다
찰리는 추수감사절 연휴 본가인 오리건주로 돌아갈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고
눈먼 퇴직 군인을 연휴 동안 돌보는 알바를 하게 되는데
두 주인공의 첫 만남이었다.
연휴 전 어느날
찰리와 조지가 학교 도서관을 마감, 정리하고 나오는데
학교의 사고를 치고 다니던 학생 3명이(조지와는 친구)
교장 선생님 차에 장난을 치고
주인공 찰리와 조지는 교장선생님께 불려가
범인의 목격자로서 범인인 학생을 지목하라고 종용받게 된다.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교장은 증언은 연휴가 끝나서 듣겠다고 말한다.
이런 고민을 안고 찰리는 연휴 동안 중령과 시간을 보낸다.
두 인물의 공통점
두 인물 모두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다.
중령은 물리적으로 시각이 찰리는 경제적 상황이
하지만 오히려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중령에게는 꼰대처럼 보일지라도 굽어지지 않는 자신의 신념이
찰리에게는 비겁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우리는 사람들 모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진 채 살아간다.
찰리와 중령은 서로가 서로에게 양쪽 모두에 있는 모습을 보이며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중령의 시각
중령은 갑자기 찰리를 데리고 뉴욕으로 날아간다.
뉴욕 가는 비행기에서 승무원에게 대프니라고 부르는데
주인공이 어떻게 승무원의 이름이 안 보이는데 대프니라고 부르냐고 묻자
영국 향수냄새와 캘리포니아 억양을 보고 유추해 불렀다고 한다.
중령은 시각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감각으로
주변과 상황을 본다.
그런데 중령은 왜 눈이 멀었을까?
→ 중령은 뉴욕에 있는 자신의 형의 집에 방문하는데
이때 조카의 이야기로 왜 중령이 눈이 멀었는지 알 수 있다.
군대에 있을 때
부대에서 술을 마셨는데
잭다니엘 4병을 마셨다고 한다.
만취한 상태로 수류탄을 가지고 놀았고
그대로 터진 수류탄의 파편이 눈에 영향을 줘
시각을 잃었다고 한다.
중령은 수류탄 핀이 꽂혀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중령은 어찌 되었든 스스로의 실수로 자신의 시각을 잃었고
그 이후 눈이 보이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눈이 먼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찰리를 데리고 다니며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춤추는 중령
한 고급 식당에서 중령은 혼자 앉아 있는 여성을 인지하고
합석해도 되냐고 말을 건다.
그리고 여성과 탱고를 추게 되는데
이 장면이 정말 유명한 장면이다.
노래와 함께 탱고를 추는데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왜 그런지 생각을 해보니
이 장면을 통해 나는 중령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몸이 움직인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닌
삶을 즐기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중령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몸으로 배어 있어 자연스럽게 탱고를 춘다.
동작들이 연결되고 노래에 맞춰 움직이는 이 행동들이
내 눈에는 시각을 잃었지만 즐기고 있는 그 행위를 즐기고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중령이 보였다.

왜 찰리를 데리고 다니나?
중령은 찰리와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단순히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인데
왜 비싼 금액을 지불해 가며 찰리를 데려가고 데리고 다닐까?
중령은 보여주고 싶어 한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가?
중령은 농담으로 자신은 뉴욕에서 볼 것을 다 보고
권총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한다.(농담이 아닌 진담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 중령은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다.
생의 연속과 마감 속에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지만 중령이 찰리를 데리고 다니며 하는 행동에서
나는 중령이 눈이 먼 자신도 세상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 보였다.
돈과 비행기의 거리 때문에 선택권이 없어 중령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찰리의 사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어지는지 보여주고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는데
중령은 뉴욕에 호텔에 있을 때
방에서 맞춤 정장을 하나 맞춘다.
눈이 보이지 않는 그가 삐까뻔쩍한 맞춤정장을 맞추는 이유 또한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심리를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직(?)한 찰리, 답답(?)한 찰리
연휴가 끝나고 학교의 상벌위원회가 열린다.
주인공 끝가지 범인인 학생들을 말하지 않는데
그 친구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왜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
사실대로 범인을 말하지 않는 찰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마지막 장면을 통해 어째서 인지 알게 되었다.
찰리는 친구들을 생각해서 의리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중령은 찰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사가 정확하진 않지만)
"이 학생은 영혼이 맑고 순수한 친구이다"
찰리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이지만 밀고자,
즉 정의감이 없는 인물이 되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찰리는 정말 영혼이 맑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와 대비되었던 인물은 조지는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항상 여유로운 척을 하다가
상벌위원회에 아버지까지 학교로 오게 되고
발을 동동 구르다 정확하게 보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다는 식으로
결국 친구 3명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조지와 찰리의 모습이 크게 대조적이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중령은 학교의 모두에게 말한다.
"이 학교를 어떤 이가 세웠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신은 완전히 죽었다"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와 그 교직원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범인인 학생과 조지, 조지의 아버지까지 욕을 갈겨(?)버리는데
딱딱한 규율 안에서 갇혀진 인재를 만드는 곳이라 할 수 있는
부패한 사립학교
기득권자인 조지와 범인들을 벌주는 게 아닌
가진 것 없지만 정직한 찰리를 퇴학시키려는 상황을 보고서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찰리는 잘못하지 않았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잘못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가 잘못의 책임을 회피하고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을 때
사회는 화살을 쏜 사람, 회피한 사람을 지나
마지막 화살이 도달한 그 화살을 피하기엔 급급했던
힘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모두가 박수를 친 이유
잘못 없는 찰리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을 할 수없다.
이미 찰리의 퇴학을 정해놓은 교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령은 끝까지 모두에게 호소한다.
이러한 제도는 잘못되었다.
그가 눈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그만이 찰리를 변호하고, 모두가 외면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중령의 말이 끝나자
"짝짝짝"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학교에 있는 모두가 박수를 친다.
중령의 외침이
모든 학생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에 감화된 상벌위원회의 위원들이 토의를 통해
찰리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낸다.
중령의 벽
중령은 연휴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중령은 여조카의 부부와 함께 사는데
여조카의 집 마당에 조그마한 오두막 같은 단칸방 집을 짓고
혼자서 거기에 지냈었다.
이 오두막은 벽 같았다. 중령이 가족들과 세상에 쌓아놓은 벽
허나 찰리와의 시간 끝에 중령은 이 벽을 허물게 된다.
중령이 집으로 갈 때 조카손주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제 우리가 친해질 때가 되지 않았니?" 농담을 하며
오두막으로 같이 데려간다.
이로써 자신의 벽을 허물고 그가 세상과 다시 섞이길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왜 형이라는 인물을 만나러 갔을까에 대한 것인데
삶을 마감하기 전 사이가 나쁘지만 한 번쯤은 보고 싶었던 걸까?
중령이 눈이 먼 스토리를 찰리가 듣게 해 주기 위한 장치였던 걸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
중령을 연기한 알파치노는 이를 통해서 6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의 연기에 대해서 부정은 없다.
예전 영화임에도 신선한 캐릭터, 과해 보이지만 입체적인 인물성,
눈이 먼 맹인 연기등
우리가 어린 시절 보았던 대부에서의 알파치노와는 또 달랐다.
비슷한 작품으로
언터쳐블 1%의 우정과 바튼아카데미가 많이 떠올랐다.
두 영화 모두 무언가 결여됨이 있는
나이 든 남자와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라 꽤 생각이 많이 났는데
어쩌면 두 영화가 이 영화의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